포스텍은 김연수 신소재공학과 교수, 정태훈 박사(현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박사후연구원), 박소연 석사 연구팀이 박수진 화학과 교수, 조창신 배터리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와 함께 영하 20도에서도 유연성을 유지하며 외부 충격까지 흡수하는 유연 슈퍼커패시터용 하이드로겔(Hydrogel) 전해질을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슈퍼커패시터는 전기를 빠르게 저장하고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다. 이번 연구에서는 활성탄 전극 표면에 이온이 모이면서 전기를 저장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또 하이드로겔은 물을 머금은 3차원 고분자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소재다. 부드럽고 유연하며, 내부에서 이온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면 전해질로 사용할 수 있다.
몸에 붙이는 건강 패치나 소프트 로봇처럼 몸을 따라 움직이는 기기에는 휘고 눌려도 멈추지 않는 전원이 필요하다. 물을 머금은 고분자 그물망인 하이드로겔은 젤리처럼 말랑해 전기를 실어 나르는 전해질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젤리를 냉동실에 넣으면 꽁꽁 얼듯, 하이드로겔도 추위에 물이 얼면 딱딱해져 부서지고 이온도 움직이지 못한다. 튼튼하게 만들려고 그물망을 촘촘히 짜면 이온이 지나갈 틈이 좁아지는 문제도 있다. 추운 곳에서 충격까지 막아주는 전해질은 거의 검증된 적이 없었다.
연구팀은 '역할 분담'에서 답을 찾았다. 하나의 젤 안에 '힘을 버티는 구역'과 '이온이 다니는 구역'을 따로 만드는 '상분리' 구조다. 연구팀은 물과 잘 어울리는 재료(친수성 단량체)와 물을 싫어하는 재료(소수성 단량체)를 섞어, 나노 크기 점토인 라포나이트를 푼 물속에서 굳혔다. 그러자 점토와 고분자가 뭉친 단단한 '뼈대'와 물이 풍부한 '이온 통로'가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뼈대는 충격을 흡수하고, 통로는 이온이 막힘없이 오가게 한다.
여기에 젤을 진한 염화리튬 용액에 담가 물이 얼지 않게 했다. 그 결과 새 젤은 비교 젤보다 잘 찢어지지 않고 버티는 정도(인성)가 약 21배, 이온이 흐르는 정도(이온전도도)가 약 2.4배 높았고, 영하 20도에서도 말랑함과 이온 전달 특성을 유지했다.
충격 완충 성능도 확인됐다. 영하 20도에서 쇠망치를 15㎝ 높이에서 떨어뜨리자, 맨 유리와 얼어버린 일반 젤로 덮은 유리는 깨졌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젤을 덮은 유리는 연속적인 충격에도 멀쩡했다. 이 젤로 만든 슈퍼커패시터는 영하 20도에서 180도로 구부려도 정상 작동했고, 5000번 충·방전 뒤에도 처음 성능의 91.6% 이상을 유지했다. 슈퍼커패시터 5개를 이어 붙인 장치는 망치 충격 직후에도 LED 불을 밝혔다.
김연수 교수는 “하이드로겔 안에서 힘을 견디는 영역과 이온을 전달하는 영역이 역할을 나누도록 설계해, 기계적 물성과 이온전도성을 함께 높인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정태훈 박사는 “전해질이 이온 전달과 충격 완충을 함께 담당해, 영하 20도에서도 충격 이후 소자 구동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나노및소재기술개발사업 및 신진연구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